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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그 허상의 깨달음

Bleuroi 2019. 3. 25. 23:40




글에 들어가기 앞서 이 감상과 해석은 온전히 저 혼자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이수진 감독님의 의도와 다를 수도 있고 다른 분들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으니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영화 전체의 스포가 포함 되어있으니 영화를 안보셨거나 영화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닫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첫 글은 3차관람 후 쓰였고 3월 26일 4차관람 +gv 후 추가 된 부분은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상을 3차 관람하고 제대로 된 감상문을 쓰기 위해 고민하다가 우선 우상 (idol)의 어원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에이도스(ειδως), 에이돌론(εἴδωλον)에 이어 라틴어 이돌룸(idolum) 그리고 이 단어로 이어지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까지 찾아보다가 투 머치인듯 싶어 가장 보편적인 우상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상은 이미지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예를 들자면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은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형상일 뿐이지 이순신 그 자체는 아닙니다. 또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 아이돌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야 말로 이미지로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팬들이 보고 싶은 모습들을 보여주는 거죠. 우상은 본질이 아닌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고 원하는 대로 생긴 이미지입니다.


​중식 : 우상을 손에 넣으려는 자


영화 우상에서 가장 우상에 얽매이는 캐릭터는 유중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핏줄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강하다 못해 비뚤어져 스스로를 아들과 구분짓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설경구 배우가 극중 아들과 동화되어 아들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잉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도 떠올랐습니다. 페르소나에서 간병인이 자신이 돌보는 여배우와 자아가 뒤섞이고 동화된 것 처럼 중식 역시 부남을 돌보며 아들과 뒤섞여버린 사람이 되고 만거죠. 부남이 죽은 것은 중식의 일부가 죽은 것과 같은 의미 였습니다. 물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다 그렇겠지만 아들의 자위까지 해주며 아들에게 병적으로 집착한 중식에게는 그런 보편적인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 아니었죠. 그러던 중 실종된 며느리 련화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시 중식의 일부를 완성시켜줄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거에요. 그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중식의 우상이 됩니다. 믿고 싶은대로 보고 싶은대로만 보게 되는 게 우상이니 그 아이가 사실은 부남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회 : 우상이 되려는 자


우상에서 가장 우상 그자체에 가까운 인물은 구명회입니다. 그는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며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죠. 도지사 보궐 선거도 앞두고 있는데 그에게 그 이미지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침 아들이 마침 사고를 치게 되고 명회는 최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건을 조작합니다.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련화를 찾아내고 살려달라는 애원에 죽이지는 못하지만(아마도 련화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안전하다고 여겼을 듯) 심부름센터 사장이 카메라와 녹취등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여러가지 증거를 만들었다는 걸 깨닫고는 바로 그를 죽여버립니다. 이미지의 실추는 명회에게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로, 결국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를 친 아들이 차라리 죽기를 바랍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우상으로 여겨질 만한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만의 우상(련화의 아이)에 집착하는 유중식도 이용합니다. 살인자의 아버지가 그 희생자의 아버지를 선거 캠프 전면에 내세우는 비상식적인 일이 둘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일어납니다. 명회는 우상이 되고 싶고, 중식은 우상을 지키고 싶고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요.



​련화 : 우상파괴자


련화는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것, 한국으로 들어올 때 이복언니와 살인을 저질렀고 그 것 때문에 한국에서 추방당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불법체류자로 있으면서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한국국적을 줄 사람을 찾습니다. 처음 선택한 중년의 남자는 련화가 도망갈까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고 하루 빨리 한국국적을 가져 안전한 상황에 놓이고 싶었던 련화는 그에게서 도망칩니다. 중식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아들 부남이 어떻게든 결혼했으면 했고 련화는 한국국적이면 누구라도 결혼해서 체류허가를 얻고 싶었죠. 또 이렇게 이 둘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집니다. 련화에게는 우상이 없고 스스로가 우상이 되려는 사람도 아니지만 중식에게 련화는 자신의 우상을 임신하고 있는 사람, 명회에게는 우상이 되려는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혐요소로 다가오죠. 중식은 어떻게든 련화의 아기를 지키고 싶고 명회는 련화를 죽이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영화 중반부 까지 련화는 우상에 미친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련화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런 우상들은 다 깨부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명회와 중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 만이 목적이었던 사람에게는 생존본능과 공격성이 있을 뿐입니다. 명회에게 잡혔다가 탈출했을 때 경찰의 귀를 물고 인질로 잡고 있는 모습은 마치 궁지에 몰려 공격하는 야생 짐승 같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청테이프 때문에 눈썹이 다 뜯기고 동물적 분노와 공포만이 가득한 눈이 강조되죠. 생존만이 중요한 동물에게 우상이 의미가 있을까요? 련화가 그토록 원하는 한국국적은 실존하는 것이고 취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일 뿐인 우상이 아니죠. 그나마 중식을 따랐던 것은 그가 련화가 그토록 원하던 한국국적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온 살인청부업자를 죽이고 아이까지 사산하게 되면서 원하던 한국국적 취득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사산한 아이를 중식이 발견하고 련화가 중식을 찾아가 부남의 아이도 아닌데 왜그랬냐. 외로웠니? 라는 말을 던지는 순간 중식의 우상은 산산히 부숴지고 맙니다.

련화는 그 후 중식에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련화를 찾으려고 쓴 2천만원을 받아다 주기 위해) 명회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것은 우상이 되고 싶은 명회를 파괴하려는 행위로 변하게 됩니다.

련화가 가스폭발을 일으키기 전 아주 잠깐 한프레임 정도 련화가 사산한 아기가 뜹니다. 이 아기는 파괴된 중식의 우상이며, 가스폭발이 또 다른 우상인 명회를 파괴하려는 행위임을 나타내는 이미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 이미지는 화요일 gv에서 이수진 감독에게 꼭 질문하고 싶은 것이기도 해요.)

+ gv에서 이수진감독님께 이 프레임에 대한 질문을 드렸고, 역시 중식이 가질 수 없는 아기의 의미로 들어갔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중식의 손 클로즈업으로 사산된 아기 + 중식의 빈 손 - 가질 수 없는 아기(우상)의 상징 이렇게 표현되었다고 합니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이론 중 인텔렉추얼 몽타주가 생각나는 편집방법이네요.



우상의 파괴 : 참수형과 화형


우상에서는 유독 목이 잘린 이미지가 많이 나옵니다. 참수형은 아주 오래된 사형방법 입니다. 누군가 명확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기 위해 머리만 잘라서 가져가기도 하고, 형벌을 받는 자의 지위와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행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프랑스 대혁명때 단두대에서 왕족과 귀족들의 목이 잘리면서 그 사람들의 신분과 아이덴티티가 파괴되는 것이죠.

이러한 참수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쓰인 방법은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성상파괴 운동이 성행할 때 우상으로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상들의 목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화형은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사형 방법 중 하나입니다. 중세 유럽에 마녀사냥이 흔하게 일어날 때 마녀로 몰린 사람들이 화형을 당했죠. 그들은 기독교의 신이 아닌 이교도의 우상에 빠지고 주술로 이단을 행한다 몰려 처형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참수형으로 우상을 파괴하는 사람은 자신의 우상이 파괴된 중식입니다. 무당에게 들었던 이 나라에서 제일 큰 사람의 목을 따라는 말을 광화문의 상징적인 이순신 상의 목을 따는 걸로 행합니다. 우상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가 서울의 상징적인 우상을 파괴하는 것이죠.

화형으로 우상을 파괴하려는 사람은 련화입니다. 명회는 스스로가 우상이 되려고 끊임없이 술수를 부리던 마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가 우상이 되는데 조력했던 가족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죠.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살려줍니다.) 결국 이 마지막 우상 파괴 행위는 실패로 끝나고 말지만요.



​우상의 허상을 깨달은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영화에 나오는 나레이션은 중식의 나레이션 뿐입니다. 나레이션을 하는 캐릭터는 영화의 주요 상황을 설명해주는 해설자이거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중식은 유일하게 우상이 허상임을 깨달은 캐릭터로 나레이션을 합니다. 그는 광화문에 서 있는 우상인 이순신 상의 목을 베는 것으로 우상이 허상임을 알리지만, 사람들은 분노하며 살아있지도 않은 동상을 추모하러 꽃을 들고 모입니다. 나중에 그의 변호사는 사람이 수백 죽은것 보다 더한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명회의 집에 들어가 가스폭발을 일으킨 련화에 대해서는 중식이 사주한 일이냐고 묻습니다. 중식은 말 없이 웃을 뿐인데, 사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죠. 중식의 우상을 파괴한 사람이 련화이고 그 때문에 우상이 허상임을 깨닫고 대중의 우상을 파괴하게 된 것이 중식이니까요.

​또한 아들이 시신을 확인 했을때 마치 부남처럼,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울던 중식은 마지막으로 련화가 집을 다녀단 후 오열할 때는 드디어 중식의 모습으로 웁니다. 마치 그제서야 부남의 죽음을 아버지로서 받아들인 것 처럼요. 우상의 허상에서 벗어나니 중식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겁니다.


명회는 가스폭발에서 살아남아 얼굴에 화상을 입은 모습으로 청중앞에 섭니다. 그가 보는 프롬프터에는 한국어로 된 연설이 나오고 있지만 그가 외치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입니다. 청중들은 대체 뭐라고 이해 할 수 없는 (gv에 따르면 실제로 한석규 배우가 개소리를 내기도 했다는) 정체 불명의 외침에 감동을 받으며 박수를 칩니다. 명회는 결국 우상이 되는데 성공합니다. 청중들은 비극을 겪은 그를 명회가 원하는 이미지 대로 또 그들이 보고 싶은대로 우상화합니다.



아뉴스데이 : 명회의 자기 우상화, ​하느님의 어린양 련화


우상에서 아뉴스데이라는 성가는 명회의 테마곡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곡이기도 하죠.


Agnus Dei, Qui to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여기서 하느님의 어린양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거룩한 제물이며 희생을 하는 예수를 의미합니다. 명회가 이 성가를 들으며 교회에 앉아 심부름센터에서 련화를 찾았다는 메세지를 받았을 때 그가 도지사 선거에 나가도록 종용하는 의원이 등장합니다. 이 성가를 배경으로 “자네 예수여.”라는 말을 던지죠. 명회는 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자신과 동일화 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명회가 심부름센터 사장은 죽일 때 나오는 음악도 아뉴스데이죠. 아들이 사고를 치고 그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명회가 살인을 하면서 스스로를 더럽히는 모든 행위가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하느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시련처럼 생각하는 거죠. 마지막 장면에 명회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외치며 박수를 받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 아뉴스데이가 나옵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고 가족을 잃은 그가 마치 하느님의 어린양인 것 처럼요.

​명회의 테마곡 처럼 쓰인 곡이지만 사실 이 음악이 가장 강렬하게 들릴 때는 련화의 눈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 - 청테이프가 반만 떨어져 한 쪽 눈만 나온 체 경찰의 귀를 물고 있는 장면입니다. 련화는 중식에게 우상이 허상임을 깨닫게 해주고 스스로 우상이 되려고 하는 명회를 가스폭발로 벌하려고 하죠. 련화와 명회는 극과 극의 인물로 련화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다면 명회는 모든 걸 가지고 더 가지려고 했죠. 사실 수많은 시련을 겪고 깨달음을 주며 스스로를 희생한 련화가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회는 단지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자기 합리화 하는 금송아지 우상일 뿐이고요.



우상은 우상이 되려고 하고 그것에 성공하는 자와 우상을 파괴하는 자, 자신의 우상이 파괴되어 우상이 허상임을 깨닫는 자가 나오는 영화입니다. 뺑소니 사고와 아들의 죽음은 이 모든 소용돌이가 시작되기 위한 장치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 사건의 해결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 영화는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세 주인공의 행동에 집중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 때문에 파멸하며 무엇을 파괴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외 :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부남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고를 당한 곳은 횡단보도도 없고 보행자도 거의 없는 해안도로입니다. 오밤중에 그런 곳 까지 간 것은 련화와 같이 무언가에 쫓겼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련화의 전 사실혼 관계이자 아마도 련화 아이의 아버지일 오석희가 그들을 추적해서 신혼여행 장소까지 따라오고 그것을 피해 도망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도망치는 중 련화는 부남을 잃어버리고 부남은 사고를 당하죠. 나중에 익사한 오석희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주변인의 말로 추측해보면 결국 련화 손에 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부남도 잃어버리고 오석희도 죽인 련화는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 버린 것일 수 있고요.

중식이 련화을 찾아 마사지가게에 가서 직원과 몸싸움을 벌인 후 손님들이 다 나와 수군 거릴때 시체는 갖다 놓고 여자는 납치했네! 라는 대사가 흘러가듯 나옵니다. 중식은 마사지가게 손님 중 누군가가 던진 말을 어느 경찰이 한말이라고 주장하며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게 전하죠. 근데 그게 사실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에요.

련화가 명회의 집에 갔을 때 전기 부터 차단합니다. 그 것은 심부름센터에서 련화를 납치하게 쉽게 련화가 일하던 라이온스 클럽의 전기를 끊어버린 것과 똑같은 상황을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해한 사람에게는 그대로 갚아주는 련화인 만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말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명회의 어머니 입에는 수저를 잔뜩 박아 죽이고 명회가 자신을 청테이프로 결박했던 것 처럼 명회의 부인을 청테이프로 둘둘 감아버린거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들을 꼽아보고 싶어 추가합니다.

1. 첫 목격자인 할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쿵쿵 소리와 함께 화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출렁입니다. 목격자를 보고 흥분한 중식이 이중거울을 두드리던 것으로 금방 밝혀지고요. 단순한 장면이지만 중식의 격한 감정이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거 같아 정말 좋아해요.

2. 목격자 할아버지가 련화을 본 이야기를 할때 표정 변화 없이 턱만 떨리는 한석규 배우의 연기를 볼때 마다 감탄합니다.

3. 명회가 심부름센터 사장 용구를 죽이는 부분 - 실제로 차에 깔린 희생자는 보이지 않으며 차의 움직임, 깔린 사람의 신음소리,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 떨어져 나간 의수 등으로 표현된 살인 장면이 정말 우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뉴스데이가 장엄하게 나온 덕도 있지요)

4. 이어지는 장면으로 눈썹 없는 눈이 반쪽만 나오고 경찰 귀를 물고 있는 련화의 등장씬을 정말 좋아합니다. 분노와 공포와 흥분이 뒤섞여 공격하는 야생 동물과도 같은 련화가 바로 그 전에 명회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결코 연약한 존재가 아님을 알리는 선전포고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되어요.


​5. 중식이 아들의 죽음을 중식으로서 받아들이고 중식의 목소리로 우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 오열이 소름돋도록 고통스럽게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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