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sies of the galaxy
크리스마스는 비엔나에서 본문
런던에서 유학중인 친구들이 프라하에 놀러와서 크리스마스 동안에는 같이 비엔나에 다녀왔어요. 가장 저렴하고 서비스 좋은 스튜던트 에이전시의 노란 버스를 타고 (요새 바꾼 새버스여서 좌석마다 비행기처럼 개인 모니터가 있고 영화랑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커피나 핫초콜렛 같은 거 주는 서비스는 여전) 5시간 걸려 비엔나에 도착. 중간에 브르노 들리고 30분 쉬었다 가느라 시간이 더 걸렸는데 직행버스는 4시간 정도 걸림. 하여간 버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중에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있길래 그거 보다가 졸다가 보니 비엔나 도착.
비엔나는 이번에 여섯번째 방문이라, 헤매는 것도 없고 어색한 느낌도 없어서 좋긴했어요. 숙소는 나쉬막크트 바로 옆 호스텔 움밧. 여행할때마다 애용하는 booking.com가서 찾아보니 저렴하고 가장 평도 좋더라고요. 나 빼고는 다들 비엔나가 처음이라 가이드처럼 숙소까지 데려다 두고, 저는 뮤지컬 엘리자베트 표를 구하러 다른 친구들은 클림트의 키스를 보러 갔습니다.
엘리자베트는(한국 라이센스 제목으로는 엘리자벳) 올해가 20주년 공연이라 비엔나 간 김에 보지 않으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아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스탠딩석 있는지 알아보려고 라이문트 테아터로 달려갔음. 아쉽게도 스탠딩석은 없고 제일 싼 좌석이 딱 하나 남아있어서 10유로 짜리 표를 한장 샀습니다. 아침먹고 쫄쫄 굶고 있었던 관계로 벨베데레로 가서 친구들과 합류,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간단하게 뇨키를 먹었는데, 슬로바키아 전통음식인 할루슈키랑 똑같더라고요. 뭐 이동네 음식은 다 거기서 거기.
간단히 밥을 먹자마자 다시 라이문트로 달려갔습니다. 자리는 기둥때문에 무대가 좀 가리는 자리였는데 1층이고 배우들 얼굴도 다 보이는 거리고 해서 꽤 좋았어요. 엘리자베트 후기는 길어질거 같으므로 다른 포스팅으로 ㅎㅎ 종합적으로는 좋았는데, 가장 중요한 죽음이 너무 맘에 안들어서 아쉬웠던 공연이었습니다.
기념품은 딱히 살게 없어서 (그리고 엄청 비쌈) 프로그램 하나만 달랑 사왔어요.
피곤해서 일찍 자고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니 눈이 내렸음! 계속 눈 내리면 돌아다니기 힘들텐데 하고 걱정하며 식당가서 아침을 먹는데 눈이 비로 바뀌더군요. 뭐 다행히 그날 가려고 마음먹었던 곳은 거의다 미술관들이긴 했지만. 움밧 아침식사는 3.8유로인데 부페식으로 무한정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살라미와 햄, 삶은계란, 플레인 요거트, 시리얼, 빵, 커피, 오렌지주스, 파프리카와 오이, 치즈 등등. 근데 움밧 다녀오신 분들 후기 보면 가끔 여기서 샌드위치 만들어 가지고 나가서 점심도 해결했다는 분들 있는데... 그러지 마세요. 움밧 식당에도 싼 가격에 아침식사를 무한정 제공하니 제발 샌드위치 같은거 만들어서 싸가지 말아달라고 써있습니다.
이날의 목표는 뮤지움스콰르티어에 가서 로모그래피 숍을 들리는것. 친구들은 클림트와 에곤 쉴레 전시를 보려고 레오폴드로 간다고 해서 어차피 같은 곳에 있으니 그쪽으로. 레오폴드는 예전에 한번 다녀와서 딱히 갈생각이 없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와서 밖에서 다른걸 할 수 없어 레오폴드와 MUMOK(현대미술관) 표를 끊었습니다. 늙은 학생이지만 국제학생증있으니 할인해주더군요. 로모그래피 샵은 물어보니 레오폴드와 무목 사이의 쿤스트할레에 있다고 해서 가봄. 아마도 로모그래피 카메라를 가장 사기 좋은 곳은 한국인 것 같아요. (한국이 더 싸고 종류도 더 많음) 원래 가지고 싶었던 라 사르디나 차르가 없어서 다른 모델을 사고 감도400짜리 필름을 세통 샀어요. 뭐 체코는 아예 로모샵 자체가 없으니 비엔나가서 사올 수 밖에.
레오폴드의 에곤 쉴레 그림. 사실 쉴레도 클림트도 딱히 좋아하는 화가는 아닌데 쉴레의 경우에는 인물화보다는 풍경화를 더 좋아해요. 인물화는 워낙 유명하고 비슷하게 그리는 일러스트작가들도 꽤 있는 관계로 딱히 감흥이 없는데, 풍경화는 평면적인 구도나 조각보 이어붙인듯한 느낌이 좋음.
레오폴드는 상설전시보다는 (클림트, 쉴레 빼고는 엄청 비슷하고 재미없는 오스트리아 인상파 그림이 잔뜩이라 졸림) 남자 누드 컨셉으로 하고 있었던 기획전시가 더 재밌었어요. 그리스 유물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모은 건지 온갖 남자 누드 작품들은 다 모아놓음 ㅋㅋㅋㅋ 조각같은 몸부터 털숭숭나고 배나온 할아버지 누드까지 아주 다양하게 봤어요. 기념품으로 남자 누드 엽서 세장이랑 구스타프 클림트의 이름이 들어간 금색 색연필을 샀어요.
친구가 찍어준 나의 비루한 실루엣 ㅋㅋ 짧다 짧아
큰 공간에 색색깔의 형광등 작품들을 배치해서 공간마다 다른 빛과 그림자가 떨어지는게 재밌었어요. 사진찍기도 무지 좋음. 관람객 모두들 여기저기서 사진찍느라 정신없었음 ㅎㅎ
MUMOK에서는 단 플래빈의 형광등 설치 작품들을 전시중이었어요. 모두들 카메라 들고 작품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신남. 비엔나는 미술관이랑 박물관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해서 좋아요. 지금 프라하에서 사는 집 책상 앞 벽에 2006년에 처음 MUMOK가서 사온 프란츠 거취의 포스터가 붙어있어요. 혼자 비엔나 가서 처음 가본 미술관이어서 인지 왠지 가장 정이 가는 곳. 비엔나 여행가시는 분들은 클림트와 에곤쉴레만 가서 보지마시고 한번 현대미술관도 들러보시길 추천. MUMOK에서는 엽서 두장과 은색 색연필을 구입.
뭐 이때까지는 다 좋았는데 비가 엄청 내려서 저녁먹으러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이 고행길. 눈이 내렸다가 비가오면서 녹아서 길이 엉망진창. 호프부르크를 지나 슈테판 성당까지 걸어갔는데 야경과 거리 조명들이 너무 이쁜데 비가 하도 와서 사진도 찍을 수가 없고! 친구가 알아본 레스토랑도 찾기 힘들어서 춥고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에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레스토랑으로 그냥 들어가서 먹었습니다. 뭐 가격도 나쁘지 않고 친절하고 맛도 좋아서 만족. 진짜 별맛 아니지만 그냥 한국 일식집 돈까스가 더 맛있지만 비엔나니까 비너 슈니첼 먹었습니다.
같이 다닌 친구가 단것 매니아라 유명한 카페를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레스토랑에서 와이파이가 터져서 알아보니 Cafe Hawelka가 제일 가깝더군요. 오래전 카페 그대로라고 했는데 가보니 프라하에서 주구장창 가던 동네 카페느낌 ㅋㅋ 저는 멜랑쥐를 마시고 친구는 멜랑쥐에 자허토르테도 같이 시켜 먹었어요. 확실히 프라하 동네 카페에서 먹어본 자허토르테보단 맛있었음. 커피마시며 수다 떠는데 자꾸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웃더라고요. 그리고 뭐라고 계속 말을 거는데 다 독일어 ㅋㅋㅋㅋㅋ 괜찮고 유명한 곳 추천해주시는 것 같아 막 받아적는데. 요새 독일어를 배우고 있어서 들리는 단어가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대충대충 알아들은거는 너네는 와인마시고 나는 맥주마시고..응??? 결론은 같이 자기랑 술마시러 가자는 거였음. 그래서 독일어 시간에 배운 문법과 단어를 총 동원하여 이히 무스 인스 호텔 게엔! 이러고 아저씨를 겨우 보냈어요. 조만간 독일어 기말고사 치는데 독일어 공부좀 더 열심히해야할듯
이날은 비오고 밖에서 춥고 지쳐 좀 일찍 숙소로 돌아옴. 첫날 체크인하고 받은 공짜 음료 쿠폰을 가지고 호스텔 바에서 와인과 맥주 한잔. 근데 맥주가 진짜 맛없음. 가격은 체코의 약 세배. 체코는 정말 맥주의 천국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엄청 맛있는 맥주가 물보다 더 싼나라는 진짜 체코밖에 없을듯 -_-
다음날은 크리스마스 이브라 동네 가게는 모두 오후까지만 하고 27일까지 다 닫는다! 라는 호스텔을 공지를 보고 근처 수퍼에서 장을 봤는데. 그래도 시내 중심가의 레스토랑은 좀 열거 같다는 추측으로 다음날 프라하로 돌아갈때 먹을 간식만 사놨어요. 오스트리아 리즐링 한병도 삼. 혹시 저녁에 다같이 마실까 했는데 다들 피곤해서 뻗어버린 관계로 프라하로 들고옴.
이날은 나쉬마크트 구경을 했는데 파는 것도 다양하고 야채도 신선하고 북적북적한 시장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비엔나 살면 매일 여기서 장을 볼테다!!!! 할 정도로. 프라하에는 아주 가끔 여는 우리동네 파머즈 마켓 빼고는 진짜 신선한 야채 파는데가 없음. 막 명절분위기에 사람들 즐겁게 장보고 무엇보다도 좋았던건 생선가게가 있었다는거! 같은 내륙국인데 왜 비엔나에만 있고 프라하에는 없나 ㅎㅎㅎㅎ 사실 프라하에도 생선가게 있긴한데 시내 중심가 백화점 지하에 딱 하나있어요. 북적북적한 시장의 생선가게 분위기하고는 완전 다름. 시장 사진은 전날 구입한 라 사르디나로 몇장 찍었는데 과연 잘 나왔을지 의문이군요. 아무래도 노출 부족일거 같음. 어느 야채가게 사장님이 내 카메라가 이쁘다고 막 그래서 아저씨를 모델로 사진도 찍었어요. 그리고 빵집에 들러 친구가 크리스마스에 같이 먹을 케익을 샀는데, 독일어로는 뭔지 모르겠고 체코어로는 바보브까라는 케익. 가운데 구멍뚤린 동그란 케익인데 그냥 파운드 케익 같은 맛임. 체코에서 많이 먹어봐서 별로 기대는 안했는데. 프라하 돌아와서 먹어보니 내가 여태까지 먹은 체코 바보브까는 그냥 구멍 뚫린 구운 밀가루덩어리였구나 싶었어요. 진짜진짜 부드럽고 맛있었음. 나쉬마크트에 있는 유명한 한국 레스토랑 김 코흐트를 지나가는데 그앞에서 아침부터 즐겁게 와인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정말 좋아하는 페터 브뤼겔. 정말 이방에서 나가기 싫었어요 ㅎㅎ
이날은 오후 3시까지만 여는 미술사 박물관으로. 전날처럼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안개가 엄청 꼈더라고요. 미술사 박물관은 초고속으로 구경. 전 예전에 한번 다녀온적 있으므로 목표는 오로지 브뤼겔! 브뤼겔 그림들 전시하는 방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미술사 박물관 막 문닫을때 나왔습니다. 저녁을 대충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기로 하고 마리아힐퍼거리를 좀 걷다가 근처에서 발견한 태국 음식점 가서 국수를 먹음. 숙소로 잠시 돌아갔다가 최종 목표 시청앞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는데 6시쯤 도착하니 이미 다 문을 닫고 있더군요. 시청앞 크리스마스 시장이 가장 이쁘다고 다들 그랬는데 이럴수가... 게다가 안개가 하도 껴서 야경같은건 찍을 수도 없는 상황 ㅋㅋ 그리고 카메라 렌즈를 실수로 줌렌즈를 끼워가지고 가서 풍경 찍는데 각이 안나와 에로 사항이 많았습니다. 라 사르디나로 몇장 찍은게 조금이라도 건질만 하길. 한통 다 찍었고 지금 새 필름 넣어놨는데. 이 필름까지 다 쓰고 내년에 현상 맡겨보려고요.
그리고 정말 보고싶었던 샹들리에 크리스마스 조명! 정말 예뻐요.
금비가 내리는 것 같은 거리조명 ㅠㅠㅠㅠ 프라하에는 이런거 없음. 근데 프라하는 거리 조명보다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더 공을 들이는듯. 프라하 구시가 광장 크리스마스 트리가 진짜 예쁘거든요. 반면 비엔나는 거리 조명에 총력을 기울이고 트리는 대충대충 ㅎ
어쨌든 장도 봐둔게 없고 뭐 먹지 않으면 아침까지 굶어야할판이라 헤매고 헤매다 겨우 문 연 레스토랑 하나 발견해서 닭고기를 쳐묵쳐묵. 호스텔에 돌아와서는 프라하에서 가져온 차를 친구랑 마셨는데 호스텔에 있는 공동부엌과 식당에 가니 다같이 크리스마스 저녁 해먹는 애들로 바글바글. 서양애들은 다같이 신나게 요리해먹고 있는데 어느 동양인 남자 (중국인 추정)가 홀로 라면 끓여 먹고 있는게 참 슬프더군요.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겨놓고 프라하로 돌아가는 버스 탈때까지 약 3시간 시간이 있어 쉔부른 궁전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모든 방들을 구경할 수 있는 그랜드투어로 오디오가이드 들고 구경하는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의 여자분이 심하게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라 웃겼음 ㅋㅋㅋ 왠지 목소리도 경상도 사투리 억양도 그렇고 김 코흐트 레스토랑의 쉐프분이 아닌가 추측.
어쨌든 떠나기 직전까지 알차게 비엔나 관광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프라하로 향했습니다. 경유도시인 브르노에 내려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아 정말 상대적으로 너무너무 가난한 도시의 모습에 왠지 슬퍼졌어요. 브르노가 체코의 제2도시이긴 하지만 프라하에 비해서는 엄청 낙후되어있고 비엔나에 비하면 시골같은 프라하보다 더욱 시골같은 곳이니... 비엔나에 다녀올때는 항상 시골에 쳐박혀있다가 서울다녀오는 기분이라. 친구들은 비엔나 다녀오기 전까지 내가 비엔나! 하악하악! 이러는 걸 잘 이해못했는데 같이 다녀오고 나서는 나의 심정을 이해함. ㅠㅠ 프라하 오기전까진 평생 서울에서 살아서 그런지, 프라하같은 작은 도시는 진짜 갑갑한듯 해요. 비엔나도 큰 도시는 아닌데 대로도 뻥뻥 뚫리고 건물도 훨씬 큼직큼직하고. 훨씬 세련되고 깔끔하고... 프라하처럼 낡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도 좋지만, 전 아무래도 도시녀자인듯.
크리스마스 저녁에 프라하로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라볶이를 해먹고, 프라하 떠나기전에 사두었던 달달한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과 오스트리아에서 사온 리즐링을 다같이 마시고 나쉬마크트에서 사온 맛있는 케익을 나눠먹으며 엘리자베트 뮤지컬 디브이디를 보며 즐겁게 크리스마스 여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돌아온지 몇일 안되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비엔나 ㅠㅠ 가면 갈 수록 비엔나에 대한 짝사랑은 더더욱 커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 가서는 사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체코인들보다 더 무뚝뚝한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최근 몇년간 체코 사람들이 이상하게 많이 친절해짐 더 잘 웃고) 애니메이션에서 실험영화로 전향해서 비엔나가서 작업을 할까 ㅋㅋ (요새 아방가르드, 실험 영화의 중심지가 비엔나) 오스트리아 남자한테 시집가서 비엔나에서 살아야겠다 하는 말도안되는 생각을 했어요 ㅎㅎㅎ